이주민 소식

‘노동력이자 이웃’…이민 정책이 성공하려면 [세상읽기]

연구원에선 보통 10월에 보고서를 마감한다. 농사로 치면 한해 수고의 결실을 보는 시기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외국인력·이민 과제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연구진들과 함께 외국 사례를 수집하고, 통계를 분석하고, 정책 담당자와 전문가 의견을 두루 듣고, 국외 출장도 두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보고서를 거의 완성한 이 시점에도 여전히 모르겠다.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 수급 불균형을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외국인을 받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누구를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해답은 도저히 구하기 어렵다.

외국인력 과제가 어려운 첫번째 이유는 연구 대상인 이민자가 그저 생산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말대로 “이주노동자는 단순 노동력이 아닌 지역사회의 소중한 이웃”이어서, 기업에서의 활용 여부만 따져서 정책을 편다면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특히 최근 단기 순환형 대신 정주형 이민이 장려되면서 이민자와 그 가족의 언어, 문화, 관습, 인권, 복지, 의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더욱 중요해졌다. 외국인력 정책은 또한 출입국 정책, 노동 정책, 교육 정책, 심지어 무역 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과제에서 이 모든 이슈를 다 다루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민은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 관계로도 연결된다. 한국으로의 인력 송출은 베트남, 타이 등 주요 이민자 출신국의 경제와 지역공동체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고령화를 겪는 다른 선진경제권 국가들과 외국 인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인데, 송출국 경제도 점차 성장하면서 이주 유인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국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이민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산업재해 사고는 한국으로의 이주를 주저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다. 지속가능한 인적 교류를 위해서는 송출국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외국인력 과제는 또한 이민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일으키는 반향과 그에 따른 반감 때문에 어렵다. 먼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외국인 고용은 국내 경제와 일자리 개선에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만 특정 산업의 내국인 노동자 처우를 악화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한계상황에 있던 기업의 시장 퇴출이 지연되면 산업 생태계의 성장 잠재력이 낮아진다. 외국인 유입으로 인한 인건비 하락은 또한 기계화와 자동화 유인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의 이동은 경제 외의 영역에서도 갈등의 단초가 된다. 나와 피부색, 언어, 문화, 종교가 다른 이들에 대한 본능적 배제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증폭된다. 마치 이민자는 내국인과 다른 종인 것처럼,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공짜 의료 혜택을 받는다거나 세금을 안 낸다거나 간첩이라든가 하는 대체로 거짓된 혐의가 덮어씌워진다. 어떤 정치세력은 반이민 정서를 자양분 삼아 영향력을 키우려 하며, 작은 갈등을 들쑤셔서 이민의 부작용을 자기 실현적 예언으로 만든다.

사회 전반의 중요한 이슈들과 얽혀 있으면서도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뇌관 같은 게 이민자 문제다. 물론 정부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출입국·외국인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법무부의 정성호 장관은 얼마 전 전문가 자문기구를 발족하면서 “이민 정책은 단순히 인력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며 사회 통합, 인권 존중, 경제성장, 지역균형발전을 아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민 이슈를 전담하는 기구 설치는 여전히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단순히 관할 부처를 옮기는 것보다 중요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거버넌스’ 구축은 더 요원하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이민 정책이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이 향후 우리나라의 존립을 결정할 중요한 화두라는 생각에 호기롭게 과제를 시작했는데, 막상 마치는 시점엔 해결책보다 문제만 더 커 보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올해 과제 하면서 정부 부처에서, 학계에서, 연구기관에서, 기업에서, 이민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적잖게 만났다. 한번의 보고서로 대단한 결실을 보려 욕심내기보다, 관심의 범위를 넓게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과 교류한다면 이 어려운 문제에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나 혼자 애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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